
몇 년 전 기술사 시험문제 출제위원으로 2박 3일 동안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적이 있다. 당연히 시험문제 유출 방지를 위해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인터넷과 연결 가능한 디바이스들은 모조리 관리 기관에 맡겨야 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아마도 출제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거다.
2박 3일 동안 한 시간이 마치 군생활의 하루처럼 느껴졌었다. TV를 통해 세상 소식을 접했음에도 인터넷연결이 차단됐다는 이유로 세상과 단절되고 고립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금에서 해제되자마자 살펴본 이메일, 문자메시지, 메신저, 커뮤니티 등에는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내용이 없어 조금은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원할 때 자유롭게 온라인 세상을 접하지 못했던 상황에 스스로 단절감과 고립감을 키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는 필자의 의지와 상관없는 디지털 디톡스(Detox) 기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끔씩 자발적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 스트레스를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일주일을 낑낑대며 고민해야 할 수준의 분석과 인사이트를 담은 글을 문장력까지 갖추고 하루도 빠짐없이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시는 분들을 보면서 한 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렇게 써도 될까, 저렇게 쓰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감일을 맞추지 못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론 본의 아니게 필자에게 스트레스를 던진 분들의 글들이‘좋아요’ 수가 많고, 공유와 댓글이 많다고 해도 정확한 정보가 아닐 때도 있다.
때론 틀린 정보의 정확한 내용을 알면서도그 내용을 지적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초연결시대 스프레더블 미디어(spreadable media)의 핵심 플랫폼인 소셜 네트워크도 언젠가부터 양질의 정보와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능을 넘어 스트레스의 소스가 되고 있다.
누군가에겐 디지털 기술발전이 디지털 아테네, 디지털유토피아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엄청난 디지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이제는 새로운 글을 쓰거나 중요 업무가 있을 때는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아예 비활성화 시키는, 간헐적이지만 자발적 디지털 디톡스를 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주변에 필자뿐만 아니라 소설 네트워크 혹은 스마트폰 등의 사용을 멈추는 디지털 디톡스를 정기적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2012년 5월 보스턴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한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는 말도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올해 초부터 퇴근 후 노동자가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개혁 법안을 세계 최초로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도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스마트폰 메신저,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한 퇴근 후 업무 지시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사이버 갑질, 사이버 왕따도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끊임없는 손쉬운 연결이 항상 유용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겪어온 현상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붕괴되었다는 것도 오히려 인간의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앞서 언급한 디지털 스트레스가 전부가 아니다. 올해 초 울산의 모 자동차 부품회사는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했다. 사물인터넷을 적용한 생산공정 관리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작업자였다.
부품 투입을 조금 늦게 한 작업자는 생산 프로세스 지연 원인 제공자로 기록에 남고, 작업 상황은 스마트폰을 통해 사장에게 보고된다. 그러다 보니 담당 작업자는 스마트 팩토리가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마트 팩토리가 도입되지 않은 인근 공장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이미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블루 칼라뿐만 아니라 화이트 칼라를 포함한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최근 패스트푸드점과 식당을 중심으로 무인 포스나 키오스크설치가 늘고 있다. 높아지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기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폰 조작법도 누구에겐가 배워야 하는 고령층에겐 키오스크를 통해 메뉴를 선택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은행 영업점도 점차 줄어들면서 무인점포로 전환하고 있고, 병원비 수납과 처방전 발급을 위한 병원용 키오스크 등도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연착자(digital retard)인 고령층들이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 디바이스들의 비대면 거래는 디지털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인 젊은 층과 세대갈등까지 유발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을 위한 것이지만, 디지털 연착자 세대들에게 새로운 디지털 기술들의 공습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넘사벽’일 뿐이다.
최근 스마트 팩토리, 키오스크뿐만 아니라 로봇과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술이 새로운 시장 형성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들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시장 생존 압박, 그리고 치솟는 인건비에 대응한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 추진으로 어느 때보다 인간과 기술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누군가에겐 디지털 기술 발전이 디지털 아테네, 디지털 유토피아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엄청난 디지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 인간과 디지털 기술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 인간공학, 감성공학, 유니버설 디자인, 미니멀 디자인 등의 접근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달리티와 사용자 경험 기술들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디지털 네이티브에서 디지털 연착자들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디지털 스트레스, 이제는 본격적으로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본 기사는 테크M 제53호(2017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