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 갈고 닦는 과학문화 토대 구축을(머니투데이, 2017.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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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무버’의 길…미래 기술 갈고 닦는 과학문화 토대 구축을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문화에 길을 묻다/전문가좌담회]활성화 방향과 과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정밀의학과 인공장기 연구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늘었지만, 노령인구를 위한 복지제도는 여전히 제자리다. 유전자(DNA) 지표를 활용해 일반질환과 암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 됐지만 여기에 걸맞은 생명윤리는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로봇이 인간 대신 생산라인에 투입돼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있지만 뾰족한 일자리 대안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모든 현상이 ‘문화지체 현상’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진단한다. 과학기술계가 연구개발과 함께 과학문화를 강조하는 것도 신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까지 바뀌어야 비로소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과학문화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우리 사회는 기술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성숙된 과학문화가 갖춰져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지난달 30일 본사 회의실에서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정명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과 함께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문화 방향’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참석자]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정명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 진행=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

◇대학 입시제도가 과학문화 확산에 발목

-차두원 KISTEP 연구위원(이하 차 위원)=먼저 국내 과학문화 현주소부터 짚어보자.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사진=홍봉진 기자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사진=홍봉진 기자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하 이 관장)=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의 과학문화 행사가 어린이들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일단 중·고등학생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고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다. 수학문제 하나 더 풀고, 영어단어 하나 더 외어야 한다. 대학 입시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처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인 청소년층이 앞으로 맞게 될 기술 임팩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사실상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사회에 던져진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흥미롭게 보는 사회 현상이 있는 데, 과학을 통해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좀더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하는 중년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계만보더라도 일반교양도서로 과학책이 잘 팔리고 있다. 박물관을 찾은 방문객중 아이와 함께 온 성인 관람객에게 물어보면 “어릴 적 꿈이 과학자였다”는 분들이 많다. 중·고등학생 때는 공부를 위한 과학을 했다면, 성인이 되어선 그제서야 내가 하고 싶은 과학공부를 한다. 이런 패턴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

▶정명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 (이하 정 단장)=창의IT캠프를 7년째 참여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을 준다면 다 왔는 데 이젠 안 온다. 외부 행사에서 상을 받으면 대학입시 때 가점을 부여했는 데 지금은 외부에서 받은 상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자기소개서에 외부 수상 내역을 못 쓰게 해둔 탓이다. 이렇다보니 국가 차원에서 적극 육성해야 하는 과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할 후보학생들이 나날이 줄고 성적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올림피아드는 그 나라의 향후 과학기술 수준, 미래 성장동력, 발전 가능성을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자료로 쓰인다. 당근책이 너무 없다는 게 문제다.

▶이 관장=허용을 해주면 과열화되고, 안 해주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얼마 전 들었던 얘기인데 한 선생님이 과학 관련 세미나를 준비했는 데 학교에서 강당을 안 내줘서 학교 인근 커피숍에서 진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심도가 이 정도다. 외부 과학 행사에 참여한 경력을 인정해주는 제도·분위기 등이 우선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얘기다.

-차 위원=국내 자연사박물관은 몇 개나 있으며, 방문인원은 얼마나 되나.

▶이 관장=지역별로 크고 작은 자연사박물관이 많이 있다. 이중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규모가 가장 크다. 구립 박물관인 데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다. 박물관이 일단 서울·수도권에 위치해 있다면 방문객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많이들 오신다. 다만, 지역 박물관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퍼스트 무버’에 걸맞는 과학문화 필요

-차 위원=4차 산업혁명이 새 정권의 정책 화두로 대두된 가운데 새로운 과학문화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관장=과학문화 행사를 기획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고 특이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기존에 나와 있는 제품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본다든지 지금까지 없던, 창의적이고 특이한 스타일의 행사가 많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선두 기업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버리고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 그에 걸맞는 과학문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요원한 얘기이다.

정명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사진=홍봉진 기자
정명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지원단장/사진=홍봉진 기자▶정 단장=저의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다. 요즈음 학교숙제 한다며 앉아서 뭘하나 보니까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학문화UCC콘텐츠 경진대회를 열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저마다의 과학소양을 발현할 수 있는 무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경력 은퇴과학자 역량 활용

-차 위원=박물관·과학관 콘텐츠를 위한 재정 투입도 중요하지만 운영할 사람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인재 양성과 관련한 얘기를 해보자. 일본 도쿄에 위치한 과학미래관(미라이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학생들과 함께 간단한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부러움에 가득찬 눈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과학관 관계자는 노벨상 수상자나 은퇴한 과학자들의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은퇴한 분들이 적지 않은 데 어떤가.

▶이 관장=우리나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는 은퇴한 과학자들보단 경력단절 주부들의 비중이 높다. 은퇴 과학자들이 적극 나서기를 꺼려한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인 데 불러주기를 원하고 있다.

▶정 단장=연구책임자 등 높은 위치에 올랐던 고경력 과학자들은 자신이 나서기보단 불러주기를 원하는 특유의 정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불러주면 기꺼이 가겠다는 분들이 훨씬 많다. 이런 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 관련한 온·오프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참여를 권하는 문화가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차 위원=과학문화전문가를 육성하는 토대가 필요하다는 말씀엔 저도 동의한다. 학예사처럼 전시 콘텐츠를 기획하는 전문가 육성이 많이 힘든가.

▶이 관장=학예사는 우리나라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 통틀어 약 10명 정도 있을 것이다. 이중 6명이 우리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잘 되는 이유는 예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다. 예산에서 인건비만 늘려줘도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물건을 사겠다고 하면 돈을 주고, 사람을 쓰겠다고 하면 돈을 안 준다.

◇“과학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

-차 위원=더 나은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과학문화를 산업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단장=‘인체 신비전’이라는 전시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비싼 로열티를 내 들여온 적이 있지 않나. 국내에서도 이런 대중적인 관심을 끌만한 전시기획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VR·AR(가상·증강현실) 등의 첨단기술을 통한 실감형 전시물로 교체를 해주는 등의 노력과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이 관장=우리나라에는 과학축전 등의 과학문화 행사가 많지만 대부분 부스식으로 진행이 된다. 한 바퀴 쭉 돌아보면 끝이다. 더 보거나 경험해볼만한 것이 없다. 인체 신비전과 같은 규모의 전시기획을 해본적이 없다. 전시아이템이 전시물로만 끝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만 좋으면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털어 보겠다는 분들이 많다. 그러기 위해선 형식이 아니라 콘텐츠 내용에 포커싱이 되어야 한다.

과학분야에 대한 기업의 기부문화도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실상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해외 과학관은 기업들이 후원이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스웨덴 박물관을 가보라. 삼성과 현대·기아자동차가 지원한 전시물이 많이 설치돼 있다. 전시물에 회사 로고가 박혀 있다. 우리나라 과학관엔 기업마크가 붙어 있는 전시물을 찾아 볼 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작은 비율이고, 그나마 수도권에 있는 박물관·과학관으로 한정돼 있다. 과학관·박물관을 지어놓으면 알아서 돌아가겠지하고 내버려두는 무관심부터 사라져야 한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사진=홍봉진 기자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사진=홍봉진 기자
-차 위원=새 기술은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도 동시에 지닌다.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등 앞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생각하고 소통할 과학기술 이슈가 정말 많은 데 4차 산업혁명 관련 새로운 기술 부문에선 역기능이 유독 강조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 관장=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AI 로봇, 드론(무인기) 자율주행자동차 등은 직장을 잃는다든지 사회·경제 역기능을 초래할 수있다는 부분이 유독 강조되고 있다. 순기능을 어떻게 조화롭게 인식을 시키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들어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수용성’일 것이다. 이런 기술과 가장 근접해 있는 과학자들이 나서야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정 단장=중국의 아디다스 공장에서 산업용 로봇을 도입해 50명이 할 일을 기계 1대가 하게 됐다는 소식을 외신을 통해 접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터넷신문이 등장했다고 해서 활자신문회사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지 않나. 그것처럼 사람의 일이 이동하는 것이지, 사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런 명확한 팩트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전달할 필요가 있다. 또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맞는 과학문화 확산의 방향성이 아직 명확하게 세워진 게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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