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게 바란다 – 과학기술정책과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 2016년 9월 미국 인터넷 매체 VOX는 영어권 270명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 과학계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 한가지와 그 이유”에 대한 설문 분석 결과를 게재했다. 7가지로 요약한 설문 결과는 연구비 확보의 어려움, 미흡한 연구 설계와 성과의 과장, 연구 결과 재현성의 위기, 피어리뷰 시스템 붕괴, 너무나 긴 논문 심사기간과 비싼 구독료, 젊은 연구자의 스트레스 등과 함께 과학계와 대중과의 미흡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 문제의 원인은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배포하는 과장된 보도자료, 종종 과장되거나 모순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과학저널리즘, 예비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도 연구과정을 생략한 채 연구결과를 과대포장하는 과학자 집단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연구비 확보가 과학자 집단의 중요한 경쟁력이자 평가기준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이 수행하는 연구의 중요성이 월등하고 게임체인져로 보여지기 원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7가지 문제점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나라 과학기술계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한 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기술대체와 경제적 효과 등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연구개발 성과, 그리고 정책의 필요성 및 합의 도출과정 보다 미래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형식적인 커뮤니케이션에만 매달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민낯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기술로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실험실과 연구실을 벗어나 시장형성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미국 교통성과 도로교통안전위원회는 ‘미연방 자율주행차 정책-도로 안전 차세대 혁신 가속화(Federal Automated Vehicle Policy-Accelerating the Next Revolution in Roadway Safety)’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자율주행차 개발과 상용화 단계까지 구체화해야 할 평가기준과 절차, 제도, 규제, 법령, 사회의 수용성 등 종합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며, 미국 정부의 발빠른 자율자동차 상용화 의지를 보여준다.
뒤를 이어 미국 대통령실주도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경제자문위원회, 과학기술정책국등이 참여한 인공지능관련 두 권의 보고서도 발간되었다. 10월에는 “인공지능의 미래를 위한 준비(Preparing for the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12월에는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Artificial Intelligence, Automation, and the Economy)” 제목의 보고서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자동화가 가져올 미국 노동시장과 경제의 변화와 명과 암을 서술했고, 앞으로 기술, 노동, 경제 분야 등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위의 보고서들이 출간되자마자 우리나라 민간기업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번역했고, SNS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물론 우리나라 관련 기술분야 정책 수립 과정에도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SNS에서 보고서들을 살펴본 일반인들의 반응은 “우리나라 정부는?”이란 댓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 새로운 기술들은 당연히 국가 경제와 산업구조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직업 유형과 노동 형태, 그리고 삶의 방식과 함께 탄생, 확산, 소멸하는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반 대중들이 알고 있어야할 관련 지식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술들의 발전은 일반인들의 해외 과학기술과 정책들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도를 높이면서 과학기술계와 정부와의 소통, 그리고 현실반영에 대한 의지도 강해졌다. 그만큼 대중들의 과학기술 리터러시, 저널리스트, 과학자, 홍보담당자, 정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2016년 알파고와 4차 산업혁명이란 혼란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대중들의 과학기술정책, 과학기술사회학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제는 대중들이 궁금한 부분을 쉽게 콕 찝어 쉽게 설명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생생한 연구개발 및 정책 보고서, 관련된 심도있는 분석 기사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대중들의 과학기술 리터러시를 높이고 정책 수용성 확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성공적으로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한 과학자, 정책전문가, 홍보전문가, 공무원, 저널리스트들에게 의미있는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하지만 객관적 근거와 분석에 의해 작성되고 실행력을 갖춘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책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