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은 혁신을 말하지 않는다
차두원(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혁신의 유형과 경로는 다양하다. 최근 성능 향상과 낮은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대체하는 파괴적 혁신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제품들보다 다이슨 제품들이 고가인 점을 감안하면 파괴적 혁신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급진적 혁신에 가깝다. 급진적 혁신은 파격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의 유형이다. 보통 3년 이상의 막대한 연구개발 기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실패의 위험도 높다. 하지만 성공하면 특허 확보 등을 통해 안정적인 시장 확보가 가능하다. 과거 트랜지스터나, 제트엔진, 전기자동차 엔진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이슨의 전략과 일치한다.
기술 중심의 기업이지만 디자인 수준도 만만치 않다. 에어 멀티플라이어와 헤어드라이어의 미니멀 디자인은 미래지향적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정밀한 기계를 연상시키는 청소기는 강인한 로봇의 내구성이 느껴진다. 정해진 디자인 스펙에 무리하게 기술을 눌러 담거나, 첨단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디자인을 수정한 어색한 흔적도 없다. 잘 빠진 디자인과 혁신적 기술들은 다이슨이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고 양산 시점에 맞추어 무리하게 연구개발을 진행한 흔적도 없다. 조직 내 기술과 디자인 파트가 주도권 싸움 없이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다이슨 연구개발 조직이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거다.
다이슨은 세상에 없던 아이템을 연구개발하지도 다수의 제품을 연구개발하지도 않는다. 필터가 먼지에 막혀 효율성이 떨어지는 진공청소기, 소음을 동반하고 청소의 불편함 안전을 위협하는 선풍기, 열손상을 유발하는 헤어 드라이기 등 필수 생활가전 소비자들의 오랜 불만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 청소기의 싸이클론(Cyclone), 핸드 드라이어의 에어블레이드(Airblade), 코안다 효과(Coanda Effect)를 이용한 에어 멀티플라이어, 공기청청 냉온풍기 퓨어핫앤쿨링크 등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들은 혁신성이 높고 친환경적이다.
이렇듯 다이슨은 기존 제품들의 문제점을 미래지향적 디자인과 혁신적 기술과 조화롭게 결합하고 해결하고 사용자의 경험을 극대화 시켰다. 마치 커피업계의 스타벅스, 자동차 업계의 테슬라 모터스와 같다. 고객이 충분히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의 고급스런 사용자 경험과 범지구적 이슈해결에 참여한다는 가치를 파는 기업이다. 물론 기존 제품들의 쉽게 개선할 수 없는 문제점을 발굴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끈질기게 오랜 시간 개발할 수 있는 연구개발 문화도 현재의 다이슨을 있게한 중요한 요인이다.
애플 아이폰의 전성기 시절 우리나라 기업들은 애플을 벤치마킹하며 디자인 경영을 외쳤고, 최근에는 다이슨이 또 다른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 동안 수많은 벤치마킹의 결과는 수평적 조직문화, 자유로운 연구개발 문화 등등 수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만한 제품이 출시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유가 뭘까?
얼마 전 만났던 우리나라 대기업 관계자 이야기가 생각난다. 몇 년전까지는 5년 후 시장을 바라보고 제품을 개발했는데, 이제는 2~3년으로 기간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개발 목표는 혁신적 제품이지만, 현실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제품들을 쫓아가는 패스트 팔로우어 역할만 계속 반복되고 있다. 직급을 파괴하고, 자유복장을 입는다고 해서 혁신이 일어나진 않는다. 제품을 개발하는 담당자들은 당연히 단시일 내 성과를 보여야 하는 혁신의 강박증에 빠져있고, 혁신에 대한 개념도 무뎌져 면역력만 높아지고 있다. 혁신의 피로도만 높아지고, 성과는 시원치 않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제인스 다이슨이 자신들의 제품을 혁신보다 발명, 제품보다는 기계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진정한 혁신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위의 글은 원문.
(신문기사 링크) http://www.hankookilbo.com/m/v/0eeb410720e0497791158a89883f1c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