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책을 읽었다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서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받았다. 러다이트 운동에서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기술들이 인간의 직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방송작가 못지않게 작성한 그들의 질문지를 접하면서 감히 바쁘다는 핑계로 인터뷰를 거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필자가 고등학생 시절 갖지 못했던 풋풋한 용기에 감동을 받아 인터뷰를 수락했다.
두 시간 넘게 질문지 순서대로 그들에게 필자의 생각을 모두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은 곧 있으면 수험생이 되는 시점에서 접하게 된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가 학생들에 주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답변을 마치고 필자는 인터뷰에 참석한 6명 학생 모두에게 대학에서 원하는 전공과 졸업 후에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를 역으로 질문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는 한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말하는 진로는 빅데이터 전문가, 프로그래머, 로봇공학자 등 정보통신 분야에 쏠려 있었다. 어느 학생의 경우 어느 기업에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자를 선발하고 연봉이 얼마인지 구체적 정보를 정확히 파악한 것을 보며 사실 필자는 적지않게 놀랐다. 얼핏 들으면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이공계 기피 해소와 4차 산업혁명 인력 양성에 희소식처럼 들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교육부 국공립대 자퇴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학년 4808명이던 이공계 자퇴생은 2015학년 5518명으로 증가했다. 사립대까지 포함하면 이공계 자퇴생은 무려 2만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은 의치한 진학과 약대 편입이 목적이며 지방대 이공계 대학생들은 수도권 대학 진학을 위해 반수나 편입을 위해 휴학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공계 휴학생 증가가 전부가 아니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졸 신입사원의 입사 1년 내 퇴사율은 무려 27.7%다. 4명 가운데 1명이 입사 1년 내에 퇴사를 했다. 이유는 조직 및 직무 적응 실패가 49.1%로 가장 높고, 복리후생과 근무지 및 환경에 대한 불만이 그 뒤를 따랐다. 적성과 흥미를 무시하고 취업만을 위한 진로 선정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적지않은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혁신도 필요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도요타를 시작으로 혼다, 미쓰이 물산, 리코 등 다수의 기업들이 재택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 등 회사 밖에서 근무를 허용하는 기업 비율은 200년 2.0%에서 2014년 11.5%로 늘어났다. 인터넷을 활용해 노동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일하는 일명 디지털 노마드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워드프레스 개발사인 오토매틱 직원 450명 가운데 440명은 세계 약 47개국에서 원격으로 일한다. 이미 디지털 노마드의 일자리를 소개하는 기업들도 다수 생겨났을 정도다.
기업들이 재택근무와 디지털 노마드 등을 도입한 목적은 명확하다. 생산가능인구와 출산율이 낮아지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남성의 육아와 여성의 직장생활, 노년층 등을 부양하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함이다. 또한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선호하는 최근 직장인들의 취향에 맞춰 업무의 만족도를 높여 유능한 인재들을 유치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잘못된 진로선정 기준에 흔들리는 학생과 부모, 유망 직업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언론과 전문가들, 2차 산업혁명 시대에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품을 생산하듯 기업이 원하는 표준화된 학생들을 찍어 내는 학교도 문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면서 경제나 회사 상황이 나빠지면 출퇴근시간과 점심시간 준수 여부부터 챙기고, 반바지와 캐주얼로 출근하면 창의성이 향상되는 줄 알고 착각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아무쪼록 인터뷰한 용기 있는 학생들의 건투를 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