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4차 산업혁명 시작됐다 (2016. 9. 10)

  • 김병수 기자

올해 초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들과 결합하며 지금까지는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다보스포럼 2개월 뒤. 한국에선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 세계 최고수인 이세돌 9단 간에 대결이 열렸다.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알파고 위력에 4차 산업혁명과 AI는 산업과 기술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실제 AI, 로봇, 3D 프린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이 활용되면 더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는 우리 눈앞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대비는 어떨까. 한 민간경제연구원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이 주요국보다 뒤처져 세계 25위에 머문다고 분석했다. 경제구조는 물론 삶의 양식까지 바꾸게 될 4차 산업혁명의 영향력과 우리의 전략을 점검해본다.

설 땅 잃어가는 한국의 주력 산업

AI(인공지능)·빅데이터·IoT(사물인터넷)로 활로 뚫어야

글로벌 장기 불황과 중국 추격 등 이중, 삼중고를 겪으며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 대한 위기감이 높다. 실제 올 2분기 우리 경제는 전분기 대비 0.7% 성장해 3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그쳤다.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5년 3개월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무엇보다 수출액 감소가 충격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상품과 서비스 등을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는 87억1000만달러로 집계됐지만, 규모는 월간 사상 최대 수준이었던 6월(120억6000만달러)의 72%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출이 지난해 7월보다 10% 줄어든 탓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바둑 대결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기존 성장 틀 깨뜨리는 새로운 혁신

장기적으로 산업 재편하는 정책 필요

수출 감소의 1차적 배경은 장기 불황과 이에 따른 교역량 감소지만, 동시에 한국 주력 산업의 부가가치 창출력과 수출 경쟁력이 하락하는 등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고부가 제조업의 추이와 수출 경쟁력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4년까지 첨단제조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연평균 -4.7%를 기록했다. 한국의 첨단제조업 부가가치 증가율은 2000~2004년에는 연평균 7.8%였지만 2005~2009년은 0.2%로 떨어졌고 최근 5년(2010~2014년) 동안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추격자의 도전도 거세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국내 주력 산업인 철강·정유(2003년), 석유화학(2004년), 자동차·조선해양(2009년), 스마트폰(2014년)이 차례로 중국에 세계 시장점유율을 추월당했다고 분석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도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의 분석 결과 글로벌 상위 5000대 기업에 속하는 한국 기업은 2004년 196개에서 2009년 190개, 2014년 182개로 10년 새 14개 사가 줄었고 매출 비중은 2004년 3.6%에서 2009년 4.1%로 상승했다가 2014년에는 4%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국(홍콩 포함)은 매출 비중이 2004년 2.6%에서 2014년 11.8%로 9.2%포인트, 이익 비중은 같은 기간 3.9%에서 11%로 7.1%포인트 증가해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기존 성장의 틀을 깨뜨리는 새로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이다. 우리는 그 서막 격으로 바둑 챔피언인 이세돌을 꺾은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목도한 바 있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첨단제조업의 경쟁력 약세가 지속하고 있어, 주력 부문을 재활성화하고 미래 고부가 산업구조로 재편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구조로 재편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병규 산업연구원장은 “제조업 강국인 정부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시장 중심의 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구글 같은 회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독일의 경제가 비교적 순항하는 배경에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혁신이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명확한 개념은 없다. 대체로 1784년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대표되는 1차 산업혁명과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1969년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이끈 3차 산업혁명에 이어 로봇이나 AI(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통해 실재와 가상현실이 통합되는 새로운 혁신을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하는 정도다. 올 초 다보스포럼의 주제로 4차 산업혁명을 택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 회장도 “인공지능, 소재과학, 유전자가위, 양자컴퓨터,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미지의 세계로 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독일, 일본 등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이들 국가에선 인공지능, 로봇기술 연구가 상업화 단계에 와 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빅데이터, 클라우딩 컴퓨터 등의 생태계를 선점하고 있으며 일본도 로봇을 통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독일도 제조 시스템을 통한 인더스트리 4.0을 중심으로 내세우고 있고, 중국은 거대 자본과 시장을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한국은 두세 발짝 뒤처져 있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올 초 다보스포럼에서 내놓은 ‘4차 산업혁명이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평가 대상 139개국 가운데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나라 25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4위, 일본은 12위로 우리보다 앞섰고, 중국은 28위였다. 노동시장 유연성 등 5개 부문에 걸쳐 진행된 이번 평가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83위에 그친 게 결정적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4차 산업과 연관된 국내 기업의 매출액 증가세 역시 크게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상장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지난 2006~2010년 연평균 9.7%에서 2011~2015년 1.8%로 뚝 떨어졌다. 반면 경쟁국의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일본 기업들은 같은 기간 역성장(-3%)에서 4.3% 성장으로 돌아섰고 중국도 12.6%였던 성장세를 13.2%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은 4.5%에서 6.5%로, 독일도 4.5%에서 5.3%로 각각 매출액 신장률을 키웠다.

특정 산업에 의존하는 집중도도 크게 높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 분야의 시가총액 대비 비중을 보면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기술적 하드웨어·장비가 19.8%로 압도적으로 컸다.

우리 정부와 기업도 추격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에선 미래창조과학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들이 전략과 인재 육성 방안을 고민 중이다. 투자도 진행 중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 9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AI, 가상·증강현실, 자율주행차, 경량 소재, 스마트시티와 정밀 의료, 탄소 자원화, 미세먼지 저감·대응 기술, 바이오 신약 등을 프로젝트 후보 사업으로 꼽았다. 정부는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향후 10년간 약 1조6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 투자와는 별도로 6152억원의 민간투자도 진행한다.

정부 전략의 핵심은 기존 제조업과 IT를 고도로 융합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경쟁력을 제고해 창조경제를 구현한다는 것.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당장 신성장동력, 미래 먹거리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 전략 프로젝트들이 너무 자주 바뀌고 있다. 앞의 9개 프로젝트만 해도 박근혜정부 들어 3번째 나온 것이다.

국책연구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창조경제나 정부의 미래성장산업 전략의 구체적인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기존에 해오던 연구개발 정책과 질적인 차이가 있는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 퍼스트무버(first mover)는커녕 또 다른 팔로어(follower)에 머무는 전략이다. 결국 선진국들의 자국 기술과 시스템 판매 전략에 말려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선 한국이 유망한 산업 분야가 있지도 않을 뿐더러 알기도 힘들다. 우리의 진행 상황과 현주소도 희망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가장 큰 장애물은 관련 분야로 진출하는 젊은이들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우수한 인재들을 이 분야로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주신 분 (가나다순, 총 12명)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부연구위원 , 박진우 스마트공장추진단장, 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이영환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스마트미디어플랫폼연구실 초빙연구원

[특별취재팀 : 김병수(팀장)·노승욱·강승태·나건웅·김기진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74호 (2016.09.07~09.20일자) 기사입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