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원의 럭키백] ‘과학과 사회-끝없는 프론티어’ 보고서 (2016. 4. 25)

1997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1세기 유럽의 연구와 혁신정책의 비전을 제시한 ‘사회-끝없는 프론티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는 1945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요청으로 ‘맨해튼 프로젝트’ 주역이자 유명 과학자인 바니버 부시가 총괄 작성한 보고서인 ‘과학-끝없는 프론티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EU 보고서는 프랑스 총리 출신으로 당시 EU 집행위원이던 에디트 크레송의 요청으로 경제학자인 파라스케바스 카라코스타스와 우구르 멀더가 집필했다. 부시의 보고서가 공공 연구기관 중심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개발한 국방 기술들을 민간 기업에 이전하고 확산시키는 데 목적을 뒀다면, EU 보고서는 당시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고령화에 따른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보고서가 작성된 시대적 상황과 주체는 다르지만, 부시 보고서 발간 50여년이 넘어 발간된 EU 보고서는 그간 과학기술정책의 초점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보여준다.

1980년대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발전을 가져온다는 명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1990년대에는 과학기술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윤리적 논쟁을 유발하면서 부시 보고서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기도 했다. 현재도 미국은 기초연구를 중장기적 산업경쟁력 강화의 밑거름으로 보는 신념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있다. EU는 과학기술을 사회 연결고리 내에서 고민해야함을 더 강조하고 있다. 물론 서로 대치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내용들이다.

과학기술과 산업 기반 자체가 전무했던 우리나라의 1960년대, 산업 중심 정책 추진으로 지금의 수준에 이른 것은 정말 대단한 저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압축성장 뒤로 EU 보고서에서 언급한 모든 사회 문제들은 우리나라가 더 심각하게 앓고 있다.

이미 노동, 자본 등 총요소투입 보다 기술발전 등 총요소생산성이 우리의 경제를 견인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우리를 먹여 살릴 성장동력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반면,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전 세계적으로 빅뱅파괴혁신을 주도하는 기술뿐 만아니라, 비즈니스 모델들도 함께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알파고’를 필두로 한 인공지능(AI)과 로봇, 2017년 말 출시됨에도 불구하고 한 주 만에 32만5000건의 사전 예약을 받은 테슬라 모터스 전기차 ‘모델3’, 5번 만에 1단계 로켓을 바다 위 무인선에 회수한 스페이스 X의 ‘팰컨 9’, 천재 해커 조지 하츠가 설립한 콤마.AI의 1000달러 수준의 자율주행차 키트 출시 선언 등은 모두 3~4월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의 등장은 기존 산업과 사회 구조의 변화와 일자리 감소, 노동형태의 변화 등도 동반하고 있다. 가끔은 이러한 기술들이 과잉혁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혁신에 침묵하는 우리나라 보다 역동적이고 미래 기술 패권에 더 가까지 접근해 있다는 사실은 부러울 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위의 보고서 두 개를 합친 ‘과학과 사회-끝없는 프론티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필요할 것 같다.

20대 국회가 새롭게 구성됐다. 이번 국회는 글로벌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대응하고, 과학과 사회를 모두 포괄적으로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연속성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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