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 혁신의 강박증과 면역력 (2015. 5. 6)

과학기술 강국인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들도 대학, 출연연,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혁신을 끊임없이 얘기한다. 이들 정부뿐만 아니라 많은 글로벌 민간기업들도 자신들을 위한 혁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창의성을 극대화해 새로운 혁신을 유발할 수 있는 건물구조와 업무공간 배치를 고민하며 신사옥을 건축하고 있는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정도다.

혁신을 부르짖는 강도는 정부와 민간조직 모두 위기라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가장 높다. 이러한 시기의 혁신정책의 공통점은 항상 혁신이란 단어 앞에 ‘새로운’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철학을 역설하고 그 철학이 만들어 낸 성과를 빠른 시간 내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혁신의 강박증’ 때문이다. 그러나 혁신의 본질인 파괴력과 실행력이 약하거나 과거를 모방한 ‘새로운 혁신’들이 자주 반복되면 혁신의 주체인 조직원들은 ‘새로운 혁신’에 무뎌지고 ‘새로운 혁신’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 당연히 성과를 쥐어짜기 위한 피로도는 높아지지만 두드러진 성과는 보일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분야의 고질적으로 낮은 투자 효율성과 미흡한 성과 창출 구조를 혁신하기 위한 논의가 뜨겁다. 2013년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16.9조를 투자했고, 국내총생산(GDP) 비율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인 1.14%다. 당연히 투자의 41.3%인 6조9923억원을 사용한 출연연과 23.5%인 3조9718억원을 사용한 대학들에겐 혁신의 피로가 적지 않은 듯싶다. 그러나 이러한 시점에서 혁신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우리나라 민간기업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듯 보인다. 2013년 정부와 민간을 모두 포함한 총연구개발비 59조3009억원의 78.5%인 46조5599억원을 사용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다.

최근 전 세계 하이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잇는 새로운 혁신유발기술인 드론, 자율주행차, 로봇 등의 새로운 시장 형성과 선점 경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래 경제를 책임질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으면서도 이제야 해외 기업들의 혁신유발기술들을 따라 가겠다고 말한다. 관련 부품 등의 개발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니 시제품 공개는 시간문제라고 말하기도 하고, 정부의 관련 규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한다. 2014년 9월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은 GDP 34% 수준인 4400억달러(약 475조원) 규모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IMF 경제위기와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학습효과로 금융권과의 관계가 갑자기 끊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려 국가연구개발투자의 28배에 달하는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의 혁신을 위한 도전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더 이코노미스트는 지나친 기업의 현금보유가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하는 케인즈의 ‘절약의 패러독스(paradox of thrift)’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민간기업들은 출연연과 대학이 즉시 활용이 가능한 기술과 인력을 제공하지 못해 산학연 협력이 어렵고 막대한 재교육비가 소요된다고 불평하는 주체가 되어버렸다. 결국 출연연과 대학이 혁신의 많은 짐을 떠안다 보니 혁신의 강박증과 면역력이 높아진 듯하다.

물론 기업들에게 누구도 혁신에 참여를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기업들 스스로 자신들과 국가를 위한 혁신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지 않으며 혁신의 강박증과 면역력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 확대되고 당연히 현재를 넘는 미래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차두원 KISTEP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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