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M) 혁신 위한 M&A 경쟁에 한국만 예외 (2014. 12. 23)

스탠포드대학 교수 찰스 존스는 1950년에서 1993년까지 미국 경제 성장 80%의 원동력이 기존에 발견된 아이디어 활용과 교육·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재 많은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교육과 연구개발에 경쟁적으로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유럽과 일본처럼 기술을 주도하는 국가들의 인구가 계속 감소하면서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조나단 휴브너가 중세에서 현재까지 혁신적 발명·발견 7198개를 해당 시기 인구 10억 명 비율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800년대에 정점을 찍고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인터넷이 최근에 탄생한 혁신으로 꼽히며, 이후엔 아직 이렇다 할 만 한 혁신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혁신의 출현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기존 시장을 뒤흔들고 파괴해 나가는 혁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공유경제 기업 논란을 떠나 앱과 앱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시도한 우버와 에어비앤비는 세계 스타트업 기업가치 순위에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성공한 혁신의 가치를 차용하고 혼합해 자신들만의 혁신으로 체화한 샤오미의 조합형 혁신, 정보통신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기술 분야를 섭렵하고 있는 구글 등이 혁신적 기업으로 꼽힌다.

이 기업들의 혁신 경로는 기존보다 빠르고 민첩하다는 특징이 있다. 내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하거나 개발하지 않고 필요시 외부의 혁신을 도입한다. 물론 이러한 발 빠른 혁신들은 다른 기업들의 추격이 과거보다 쉽고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 글로벌 마켓을 선점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된다.

어려워지는 혁신과 우리의 현실
최근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인 핸드폰과 자동차 시장의 위상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률은 약 7%로 애플의 27%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작년과 올해 1분기 영업이익률이 20%까지 올랐던 삼성전자는 올해 2~3분기 샤오미 등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져 마케팅 비용을 올리고 판매단가를 낮추면서 급락했다.

현대차는 최근 1년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 가운데 가장 큰 주가 하락폭(36.2%)을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 세계 5위 자동차 판매 기업으로 올라섰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 미국 빅3 업체들이 파산의 갈림길로 몰리고, 일본차 업체들이 엔화 강세와 2011년 동일본 지진, 2010년 도요타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외부 요인이 호재였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하게도 현대차 그룹의 추가 도약과 미래 성장의 한계를 얘기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을 이끌지 못하는 기업은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파괴적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인수합병(M&A) 오픈 이노베이션은 필수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제는 M&A가 혁신의 빠른 속도를 유지하고, 팔로우어와의 간격이 좁혀지는 것을 막기 위한 주요한 혁신 수단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기술문화⑦] 혁신 위한 M&A 경쟁에 한국만 예외

해외 주요 IT기업들을 중심으로 최근 10년 동안은 그 어느 때보다 M&A가 활발하게 전개됐다. 시장조사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5000억 달러에서 8000억 달러 사이를 맴돌던 세계 M&A 거래 규모는 올해 2분기에 이미 1조 6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M&A가 소강상태였던 기간 동안 기업들이 내부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게 됐고, 이 현금을 투자하기에는 M&A가 최적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거래의 한 가지 공통점은 많은 기업들이 핵심 분야를 보강하고 집중범위를 더욱 좁히기 위해 M&A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구글을 살펴보자. 이 회사는 2001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공식적으로 159개 기업을 M&A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는 M&A에 약 176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2012년 이후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등 본격적 인수합병 행보에 나서고 있다. 2011년까지는 주로 검색과 무선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을 했다면, 201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물인터넷 플랫폼과 핵심기술 분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구글의 M&A 행보는 미래 기술에 집중돼 있다.

최근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국도 무섭다. 풍부한 자금을 통해 해외 자원기업들을 중심으로 M&A를 하던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해외 브랜드와 기술을 획득하려는 민간기업들의 M&A 행보도 공격적으로 변했다. 2013년 중국 민간기업의 해외 M&A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230억 달러로 2010년보다 무려 3배나 증가했다. 대표적으로 레노버는 29억 달러로 구글 모토로라 사업부를, 23억 달러로 IBM 서버 사업부를 인수해 이제는 HP를 압박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 기업의 최대 성장동력은 M&A다. 모바일 전 분야에 걸친 서비스를 제공하는 텐센트도 창의적 모방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 창조와 함께 창의성과 기술력을 보완할 수 있는 공격적 M&A를 하고 있다. 앞으로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3대 IT 업체들이 글로벌 M&A 열풍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혁신과 M&A에 인색한 한국
지난 9월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은 국내총생산(GDP)의 34% 규모인 459조 원으로 나타났다. 일본(44%)보다는 낮지만, 미국(11%), 독일(20%)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다. 기업들의 현금 보유량이 국가 경제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만 풀어도 우리나라 GDP는 2%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차세대 먹거리 찾기에 분주하면서도 M&A에 인색하다. 2013년 우리나라 전체 M&A는 451건으로 2011년 431건과 비교해 4.6% 증가했지만, 2012년 543건에 비하면 16.9% 감소했다. 특히 국내기업의 외국기업 M&A는 17건으로 2012년에 비해 12건 감소했고, M&A 규모도 5000억 원으로 1조 7000억 원에 비해 70.6%나 감소했다.

[기술문화⑦] 혁신 위한 M&A 경쟁에 한국만 예외

오히려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업 M&A에 관심이 높다. 2013년 외국기업의 우리나라 M&A는 2012년에 비해 13건 증가한 41건이고, M&A 규모도 2조 1000억 원 수준이다. 일본이 14건, EU가 11건 미국이 7건 등으로 주요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최근에서야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분야를 중심으로 공격적 M&A를 통해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총 21개 기업을 M&A를 했고, 그 가운데 10개 기업은 작년부터 현재까지 인수한 것이 그나마 최근 주목을 받는 M&A의 전부다.

기업의 존속에 있어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단 한 번의 혁신이 아니라 현재의 혁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편적 기술로 일반화될 때 또 다른 혁신을 연속해서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혁신의 잠재력이 가장 필요하다. 2014년 포브스의 혁신적 기업 순위를 살펴보면, 애플과 삼성은 순위에 없다. 애플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선보였고, 더 이상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뛰어넘는 혁신이 나타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 존속의 핵심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형성해 다른 기업보다 더 민첩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시스템을 선점하는 것이다.

가장 빠른 혁신 경로는 M&A
한때 우리나라 기술 개발의 핵심 가치는 자체 개발을 통한 국산화와 수출 대체 등에 있었다. 기술의 초기단계부터 양산까지 전체를 직접 수행하고 성공하는 것이 우리가 자랑하던 혁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고 있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기업은 시장에서 잊힐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혁신의 가장 빠른 경로는 바로 M&A다.

직장 평가 사이트인 글래스도어(glassdoor.com)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에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우리나라 기업의 점수는 5점 만점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1점(OK) 수준에 그쳤다. 이들 기업은 근면하고 성실한 직원들, 브랜드 파워, 고연봉과 사내 복지 등을 장점으로 꼽지만, 무엇보다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연공서열(seniority)과 수직적 문화가 단점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평생직장 보다는 몇 년 동안은 다녀 볼 만한 회사라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구글 4.4점(very satisfied), 애플 3.9점(satisfied), 바이두 3.9점(satisfied), 알리바바 3.7점(satisfied), 레노버 3.3점(satisfied)등은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혁신과 M&A를 얘기하면서 기업문화를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외기업들의 M&A(Cross-Border M&A)는 대부분 기술과 시장에 대한 잠재력, 특히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을 매각하는 외국기업 대주주 입장에서는 임직원의 고용승계 뿐만 아니라 근무 환경, 즉 기업문화도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해외기업들은 일과 삶의 균형, 연공서열과 수직적 문화로 평가돼 있는 우리나라 기업을 상대로 한 M&A를 꺼린다는 것이다.

[기술문화⑦] 혁신 위한 M&A 경쟁에 한국만 예외

다음으로 M&A 대상기업에 대한 존중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인수기업의 임원이나 새로 영입한 전문가를 통해 피인수기업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래브너는 인수대상기업의 경영진이 통합된 기업의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역할을 잘 수행한 경우보다 높은 재무적, 전략적 성과를 달성하고 종업원의 만족도도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빠른 성과와 기업의 안착에 목매어 인수기업 소속의 경영진으로 교체해 기업 전통과 노하우, 개발 문화 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M&A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로 정서적 문제를 꼽은 적이 있었다. M&A에 대한 인식이 경영권을 빼앗는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이제는 내적 혁신이 한계가 있는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 혁신 전략으로 인식이 개선됐다. 이제는 인식의 문제를 넘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서는 혁신 수단인 M&A를 활성화하기 위한 기업문화를 고민할 시기이다.

물론 기업문화가 한 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대학에서는 기술경영, 기업가정신, 창업교육 등이 확대되면서 변화의 모습들도 감지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에 M&A 관련 교육도 병행하자. 우리나라의 많은 창업자들은 출구전략을 기업공개나 상장(IPO)으로 생각하지만, 이제는 국내·외 대기업 등에 매각을 목표로 창업을 준비하는 전략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는 대기업들도 연구개발비의 1%만이라도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연구와 실험에 투자해 보면 어떨까?
글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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