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 2014년 노벨과학상 시즌의 잔혹사 (2014. 10. 29)

올해도 노벨과학상 수상자 명단에 우리나라 과학자는 없었다. 올해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수준의 한국인 과학자들을 거론하면서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역시나’ 무너졌다. 오히려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일본인 과학자 3명이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언론과 전문가들의 관심은 더 벌어진 ’19:0’이란 일본과 우리나라 노벨과학상 수상자 스코어에 꽂혔다.

엄밀히 말하면 노벨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113년이란 기나긴 시즌의 대결이고,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난부 요이치로와 올해 같은 분야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가 미국 국적자임을 고려하면 17:0이 정확한 스코어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이 계속 늘어나면서 노벨과학상 수상이 마치 스포츠 경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스포츠 관점으로 보면 0점 패배를 지속하며 매년 스코어가 벌어지는 지독한 대결의 잔혹사다.

사실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기초연구 추진 역사와 과학기술 외교, 그간 누적된 연구개발 투자 등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일본과 노벨과학상 대결 상대가 못 된다. 19:0이든 17:0이든 매년 3개 분야에서, 그것도 많아야 분야별로 3명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노벨과학상의 스코어에서 짜릿한 기적 같은 역전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매년 수상자들이 발표될 때마다 수상자 개인의 특수한 상황은 일반화돼 노벨과학상 수상을 위한 ‘비법’과 ‘솔루션’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에서 연구업적이 발표되면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세계적 연구업적을 가진 연구자 네트워크에 포함된 수상자가 발표되면 유망 신진연구자들을 해당 네트워크에 포함되도록 지원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을 모아 보면 우리나라 주요 과학기술정책에 모두 포함돼 있는 내용들이다.

바로 이런 것이 ‘단기 문제해결 중심’의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단면이다. 많은 정책들이 공무원, 전문가, 과학기술정책 연구자들을 통해 제기된 문제점을 단기간에 해결하기 위한 어젠다 발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연히 성과목표도 몇 년 후 관련 지표 개선 중심이다.

물론 단기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추진이 필요한 분야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과학기술분야에서 아무리 전 세계에서 좋은 성과를 배출한 정책들을 모두 도입해 활용한다 해도 단기적 성과 달성을 위한 제한된 범위의 전략을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정책을 위한 정책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과감한 투자와 오랜 시간 연구가 진행된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원하고 목말라한다.

철새 연구자 문제를 얘기하지만 이 역시 단기 문제해결 중심 정책의 산물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류를 위해 새로운 연구 분야를 발견하는 창조적 혁신과 기존 개념을 뒤엎는 파괴적 혁신에 수여하는 노벨과학상 수준의 연구결과는 나올 수 없다. 단기 문제해결형 정책을 넘어 좀 더 먼 시점에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충격을 주고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목표를 가진 과학기술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아무리 창조적이고 파괴적인 혁신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범용 기술이 되고 만다. 당연히 과감한 목표와 함께 끊임없이 혁신이 탄생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창조적, 파괴적 혁신을 주도한 한국인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더라도 단 한 번의 수상에 그치고 만다면, 그 스트레스는 차라리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제는 좀 더 긴 훈련기간과 투자가 필요하더라도 새로운 기록을 세울 만한 플레이어들이 계속 배출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중심으로 고민하자.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략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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