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첫 노벨상 때 후보 배출
8일 화학상을 끝으로 올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마무리됐다.
일본인 아카사키 이사무(85) 일본 나고야대.메이조대 교수, 아마노 히로시(54)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60) 미국 UC샌타바버라대 교수가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들을 포함한 일본인 역대 수상자는 총 19명으로 늘어났다(일본 국적자는 17명). 이를 두고 인터넷 등에서 양국의 수상자 숫자를 비교해 ’19대 0’이란 냉소적 말이 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결과(노벨상 실적)만 놓고 스포츠경기 점수 비교하듯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은 첫 노벨상이 수여된 1901년부터 공식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노벨위원회가 공개한 1901~63년 후보 명단에 따르면 일본은 1901년 기타자토 시바사부로가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명된 이래 총 163명이 공식 후보로 꼽혔다. 같은 기간 한국인 후보는 한 명도 없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실장은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래 국가가 지속적으로 기초과학 분야를 지원해 왔다”며 “한국과는 뿌리의 깊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차 실장은 도쿄대(1886년).교토대(1897년) 등 당시 세워진 7개 제국대학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이 중 5개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올해 수상자 중 아카사키(교토대)와 아마노(나고야대)도 이 경우에 속한다.
반면 한국은 이보다 훨씬 늦게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다. 77년에야 미국과학재단(NSF)을 본떠 한국과학재단(현재 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됐고 본격적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하기 시작한 건 80년 이후다. 국가 연구개발비(R&D) 총액이 1조원을 넘긴 게 93년, ‘국가대표급’ 과학자들의 연구를 장기 지원하는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이 시작된 건 96년이다. 일본 기초과학의 뿌리가 100년이 훌쩍 넘는 반면 한국은 30년이 겨우 넘은 셈이다. 안화용 한국연구재단 성과확산실장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지원책으로 “연구자 맞춤형 장기 지원”을 꼽았다. 현재 한국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국가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4.4%)다. 하지만 일부 대형 연구단을 제외한 개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은 모두 3년짜리다.
김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