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창업활성화 정책이 강조되면서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산학협력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산학협력 시스템과 상호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교육계‧과학기술계‧민간기업간의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사진=플리커]
정부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창업활성화 정책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창업성공의 원형 모델이자 스타트업이 진출해야 할 최종 목적지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실리콘밸리를 재현하려는 노력은 미국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다. 우수한 대학·연구소·인재·자본·정부의 의지 등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도 실리콘밸리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미국에도 존재한다.
시카고의 실리콘 프레리(Silicon Prairie), 뉴욕의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 등이 그 예이다. 실리콘밸리 의 성공은 다양한 경제이론으로 설명하기 힘든 ‘혁신의 미스터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T2 벤처캐피털의 CEO이자 실리콘밸리의 성공비결을 잘 설명한 「정글의 법칙」의 저자인 빅터 황은 “실리콘밸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대화를 나누고 정보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한다”며 “권위주의가 없고 실패에 관용적이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빠르게 수용되고 흡수되는 독창적인 문화가 성공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세계적 CEO와 기업을 배출하며 기업가 정신과 창업으로 대표되는 스탠퍼드 대학이 든든히 자리 잡고 있고 외국의 인재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환경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혁신 생태계를 구성하는 구성원 사이의 신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국내에서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산학협력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부품과 기술의 글로벌 소싱이 가능해졌고 정부의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은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과 대학 사이의 협력 필요성은 급감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기능도 애매모호해졌다. 그 결과, 산학협력 시스템은 붕괴됐고 상호 신뢰도 사라져 버렸다. 정부는 해외창업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해 5월 실리콘밸리에 IT지원센터와 창업지원센터를 설치했다.
또한 국내 유망 인터넷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글로벌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인턴십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정부·대학의 연계가 사라진 상황에서 실리콘밸리를 한국에 들여오겠다는 전략은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교육계·과학기술계·민간기업 모두가 그동안 추진했던 창업시스템과 현재의 혁신생태계를 점검하고 상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려면 효율적인 전략과 개방적 문화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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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주체는 민간 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혁신이 발생하고 잘 자랄 수 있는 제도와 환경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대덕연구개발특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경기도가 주도한 판교테크노밸리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시 양재 주변에 대기업 연구소를 포함한 200여개가 넘은 기업부설연구소와 140여개의 벤처기업이 입주한 양재밸리가 자생적으로 조성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특유의 혁신 클러스터의 성장 가능성이 자라고 있다는 얘기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략기획실장 doowoncha@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