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환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더 이상 재난 안전 R&D(연구개발)를 방관·회피하거나 늦출 수 없다는 절박함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과학자들은 하던 연구를 잠시 내려놓고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예기치 못한 재난 앞에서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 재난 안전 R&D와 관련해 “과학기술계 역시 책임 있다”는 성토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 탓이다.
본지는 또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시스템화돼 실질적으로 적용 가능한 대책이 될 수 있도록 R&D 구축·운영에 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함께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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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上 시계방향)우효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 최성열 방재안전기술원 대표, 원동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산업시장분석실 책임연구원,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실장/사진=KISTEP |
최성열 방재안전기술원 대표(국과심 거대공공전문위원)는 국가 재난 안전 R&D에 기업 참여가 어려운 점을 먼저 지적하고 나섰다.
최 대표는 “재난 연구는 공공적 성격이 강해 민간보다는 공공수요를 바라봐야 하는 데 막상 기술을 개발하고 나면 공공파트에 기술·제품을 납품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에서 개발한 재난 안전 기술의 권리 보장과 더불어 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국가 R&D를 통해 지원한다는 패러다임 설정이 필요하다”며 “R&D를 통해 개발된 일정 기술에 대해선 공공파트에서 사전구매 등을 담보해줘 소기의 성과가 나오는 경우 즉시 사업화로 연계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두원 KISTEP 정책기획실장도 최 대표 뜻에 동감하며 “일본에선 인터넷쇼핑몰에서 임시 칸막이 등 갖가지 구호물품을 내다팔 정도로 이재민에 대한 제품·서비스가 잘 개발돼 상용화 돼 있다”며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사회·공공디자인 등이 재난을 당한 이재민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되돌아볼 때”라고 꼬집었다.
우효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이재민 아픔을 보듬는 R&D도 이제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재해·재난의 경우 한 번 일어나면 원상복구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므로 이재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임시 주거공간 등의 대책도 간과해선 안 된다”며 건설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유닛모듈 구호주택’이 그 대안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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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모듈구호주택/사진=건설기술硏 |
이는 입방면체 모양의 주택구성 부분을 유닛모듈화해 조립만하면 하룻만에 지을 수 있다. 전기와 상하수도 공급도 가능하다.
임시조립 구호주택은 평시에 보관도 쉬워 최대 3층 복층으로 보관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재민 발생 시 대량으로 양질의 임시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이어 우 원장은 지난 경주 리조트 붕괴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수많은 국가건설 안전 기준을 실험·실증을 통해 검증하고 필요시 기준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형건물 붕괴, 산사태, 도로·철도 유실이 일어났을 경우 긴급 구호할 수 있는 장비와 장비이용법 등을 종합한 ‘응급 구호 기술 패키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원동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산업시장분석실 책임연구원은 “생애 주기 재난·재해 리스크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난·재해의 선제적 예방을 위해선 종합지원체계 구축이 우선된다며 원 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방향을 △재난·재해 취약성 도출 △리스크평가 및 시뮬레이션 모델 적용 △대응 전략도출 3단계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