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포럼] 사고로 안전을 배우진 말자 (2014. 4. 30)

세월호 사고 수습과정을 바라보면서 25년 전 대학 1학년 시절 공학입문이란 과목에서 배웠던 시스템의 기본 내용이 생각났다. 시스템은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수의 서브시스템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집합체로 정의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시스템들은 인간의 역할이 필요한 인간-기계 시스템(human-machine system)이란 것이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 시스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계와 인간의 통합 업무 수행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조작자의 선정과 휴먼에러(human error)를 고려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공부했던 내용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고장이 발생했을 때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시스템을 설계할 때는 최악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스케이스(use-case)를 예상하고 상세한 대응 매뉴얼을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사람이 잘못 조작하더라도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는 풀프루프(fool-proof), 고장이 발생하더라도 위험으로 연결되지 않는 안전장치 등을 설치하는 페일세이프(fail-safe) 등도 필수 설계 요건이다. 리허설이란 단어는 연극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대응 매뉴얼이 아무리 문서상으로 완벽해도 반복적 교육과 훈련, 리허설을 통해 담당자들은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매뉴얼에 따른 판단과 대응절차를 본능적으로 수행할 정도로 체화돼야 한다는 것은 시스템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철학이다.

공과대학생이나 졸업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너무나 기초적인 시스템 설계와 운영 원칙들이다. 모든 시스템의 핵심은 인간이며 하드웨어ㆍ소프트웨어와의 유기적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2012년 수립된 제1차 국가해사안전기본계획에는 2006~2010년 발생한 해양사고의 89.1%는 인적(선원)과실이며, 인명 피해의 주요 원인의 84% 역시 인적과실이라고 분명히 분석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월호 승무원들, 외부에서 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해상관제센터, 해양경찰, 해당부처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들은 침몰이라는 최악의 선박 운행 상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같다. 교과서에 실린 기본적인 시스템 설계와 작동, 운영원칙만 지켰어도 세월호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난ㆍ재해와 안전사고 저감을 위한 국가차원의 기술개발과 투자방향을 제시한 제2차 재난 및 안전관리기술개발종합계획 시행계획에 따르면 2014년 정부의 재난 안전 관련 연구개발 총 투자는 2785억원으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 투자 17조7000억원의 1.57% 수준이라고 한다. 재난 재해 관리 관련 예산을 살펴보면 재난 대피기술 및 이재민 구호기술 개발에 3억8500만원, 협업행정기반의 선진형 재난관리체계 구축에 7000만원의 예산이 포함돼 있고, 산ㆍ학ㆍ연ㆍ정부 협력체계 구축, 정책수립 및 기술평가 전문가 양성, 재난관리 전문 인력 수요창출을 위한 연구개발 예산은 0원이다. 첨단과학기술, 기초연구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대형 재난과 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인간-기계시스템 안전 연구는 분명 정부가 이끌고 책임져야 할 과학기술 분야의 하나로, 원활한 재난 재해에서 인명 구조의 가치가 얼마나 커다란지는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정부는 재난 상황별 매뉴얼을 전면 개편한다고 한다. 행정차원이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의 과학적ㆍ공학적 관점으로 산ㆍ학ㆍ연ㆍ정부가 모두 모여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을 발굴하고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교육ㆍ훈련과 리허설을 실시해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매뉴얼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 더 이상 후진국형 인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사고를 통해 안전을 배우지 마라(Don’t learn safety by accident)’는 너무나 식상한 슬로건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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