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달했다면 세월호 침몰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참사는 없었을지 모른다. 사물인터넷을 적용하면 선박 내 사물들이 침몰 위험을 감지해 인터넷을 통해 구조를 요청하고, 침몰 직전에는 선박이 자체적으로 승객 구조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2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주최로 열린 ‘사물인터넷, 새로운 도전과 기회’ 포럼에서 사물인터넷이 미래에 어떻게 이용되고 어떤 기회를 창출하는지가 주제발표를 통해 밀도있게 조명됐다.
운전자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자동차 스스로 움직이고 앞차를 추월하고 주차까지 끝내는 무인자동차 또한 사물인터넷을 통해 가능한 미래의 모습이다.
김병우 울산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는 “자동차 사고의 원인을 분석했더니 93%가 운전자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며 “세월호 침몰 사고도 결국은 선장, 선원 등의 실수가 빚은 참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사물인터넷을 활용하면 선박의 각종 수화물 상태를 모니터링해 자가진단하고 이를 통해 선장의 잘못된 판단을 선박 스스로 감지, 안전을 확보하는 시스템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자동차에 탑재된 센서가 주행상태를 감지하는 현재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면 자동차와 자동차끼리 통신할 수 있게 된다. 즉, 앞서 달리는 자동차와 수시로 통신하면서 도로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갑작스런 추돌사고가 발생하거나 교통신호가 바뀌는 경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5년여의 시간이 흐르면 실제 도로에서 이같은 기술이 구현될 것으로 예상했다. 차량의 모든 부분에 센서를 장착하고 차량 간 통신이 가능한 장치를 탑재하면 운전자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알아서 주행하고 앞차를 추월하고 자동으로 주차까지 하는 무인자동차가 탄생하게 된다.
사물인터넷은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곳에든 적용될 수 있다. 김홍진 인성정보 본부장이 소개한 헬스케어와 관련해서는 환자가 의사의 지시와 처방대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매일 운동을 하고 있는지 등의 수용성을 판단하는 데에 사물인터넷이 활용될 수 있다. 환자 주변의 사물들에 센서를 탑재하고 가족, 주변인물들과 소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1명의 환자를 두고 여러 의사, 의료 전문가들이 일방향으로 진단 및 처방을 내렸다면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전문가들이 상호 소통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환자에게 좀더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환자 주변인들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질병 치료에 대한 환자의 동기를 북돋울 수 있다.
인터넷, IT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농업 분야도 사물인터넷을 활용하면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스마트 농업’이 가능해진다. 김상철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박사는 “생산 과정에서는 토양센서를 통해 토양정보를 수집하고 작물센서를 통해 작물정보를 파악해 비료나 농약을 작물이 요구하는 만큼, 곳에 따라 다른 양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제어시스템으로 농장 내 센서와 서버를 관리하고 로봇에게 이식 및 수확 작업을 맡기는 ‘완전제어형 스마트 식물생산공장’도 이미 현실이 됐다.
유통분야에서는 스마트폰 앱, 인터넷 홈페이지, SNS를 통해 농작물을 경매에 부치거나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다. 다양한 영농기술을 소개하는 앱을 통해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거나 SNS를 통해 ‘사이버 작목반’을 운영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잔류농약, 원산지 등 소비자들이 민감해하는 정보를 스마트기술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도 있다.
차두원 KISTEP 전략기획실 실장은 다가오는 시대를 ‘커넥티드 경제’라 이름 붙였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시스코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사물인터넷을 통해 14조4000만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경5600조에 달한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드는데다 경제적 효과까지 엄청난 사물인터넷이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찮다. 차 실장은 “사물인터넷의 가장 큰 단점은 아이디나 비밀번호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해킹으로 물리적인 힘을 가할 수 있는 사물을 움직여 인간에게 해를 주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자리 감소,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사생활 침해 문제, 문화쏠림 현상, 기계 의존적 의사결정, 전자파 유해성 논란, 급증하는 전자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유해화학물질중금속 등의 환경문제 등도 사물인터넷 시대에서 예상되는 문제들이다.
차 실장은 다가오는 사물인터넷 시대에 우리 기업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스턴 컨설팅, MIT 등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가장 스마트한 기업 등을 선정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이 이름을 올리지만 정작 사물인터넷을 주도하는 기업들 명단에는 제외된다.
네트워크월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사물인터넷을 현실로 만드는 10개 기업은 시스코, SAP, 모바일 월드 캐피탈 바르셀로나, AGT인터내셔널, 슈나이더 일렉트릭, 보쉬 등 해외 기업들뿐이다. 패스트 컴퍼니가 올해 2월 꼽은 사물인터넷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 명단에도 구글, 필립스, 쿼키, 로그미인, 인텔 등 해외기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가는 물론이고 EU 또한 범공동체적으로 사물인터넷 산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차 실장은 3가지를 주문했다. 먼저 삼성전자와 애플 간에 벌어진 1차 소송전의 핵심이었던 UX(사용자 경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다. UX와 관련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더욱 활발한 논의와 지속적인 연구,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국산 무선인터넷 플랫폼 위피(WIPI) 규제 때문에 아이폰 도입이 늦어지면서 무선 생태계 도입도 늦어졌다. 새로운 기술 발전을 막는 규제를 제거하고 테스트베드를 활성화해야 한다.
차 실장은 앞으로 소득격차와 관련해 ‘커넥티드 디바이드’ 논의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연계 내지 소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커넥티드’는 기존의 경제시스템, 연구개발 주체들 간의 연계, 부처 간의 연계 등을 포함한다. 여기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커넥터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차 실장은 “정교하고 효율적인 커넥터를 중심으로 경제 시장이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