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기관 담당자들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제시한 투명성 제고, 방만경영과 예산낭비 방지, 과다한 복리후생 시정 등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4대 분야 20개 과제’는 현 실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출연연 정상화를 위해선 먼저 PBS(연구과제중심제도) 제도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PBS는 출연연 연구비 지원에 경쟁개념을 도입해 연구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1996년 도입됐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이 제도는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했다.
PBS는 연구자들 급여를 정부로부터 50%만 지급받고, 나머지는 연구자가 직접 외부 기관 프로젝트를 수주해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연구원들은 인건비 확보를 위해 외부과제 수주에 ‘올인’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과제 수주를 위한 기획업무에만 치중할 수 밖에 없다 보니 기관 연구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고, 연구 역량 역시 분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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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PBS 제도의 문제점 |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연구보다는 부족한 기관운영 비용, 즉 인건비, 경상운영비 등을 확보하기 위해 2~3년 이내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성과 위주의 소규모 프로젝트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게다가 연구자들 간 협업보다는 과제 수주를 위한 불필요한 경쟁을 벌여 비협력적인 연구문화가 조성됐다. 이장재 과총 정책연구소장은 ‘출연연 위상재정립 및 발전전략'(2008년) 보고서에서 “PBS는 현 정권이 추구하는 융복합 연구를 위한 산·학·연 협력 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심각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인건비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책임자는 비싼 정규직보다 값싼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됐다. PBS가 곧 출연연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한 주요 원인이 된 것. 정부의 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출연연 비정규직은 1998년 1498명에서 지난해 6106명으로 약 308% 증가했다.
‘출연연 PBS대체모델 적용연구'(2006년, 김계수·이민형), ‘출연연 발전방향 도출을 위한 현황분석과 정책점 시사'(2009년, 천세봉·박소희·차지영) 등 PBS의 부정척 측면을 정면으로 다룬 논문과 보고서만 20여 개에 달한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정책기획실장은 PBS 대안으로 ‘블록펀딩'(Block Funding)을 검토·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연구기관 고유 목적 및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연구 촉진을 위해 정부가 연구방향과 총액만을 결정하고, 기관장에게 예산집행 자율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밖에 출연연 고유사업을 위한 출연금 비중이 낮아 전략적 연구비로서 기능이 어렵다는 점도 출연연 정상화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정부 출연금은 총 1조7794억원으로, 당초계획안보다 20.1% 낮게 책정됐으며, 작년에 비해 0.7% 오른 데 그쳤다.
부처 사업의 단기 성과주의 및 정책의 일관성 부족으로 출연연 임무와 연계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연구시스템이 약화됐다는 점도 해결할 문제로 집중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정부 할당 과제 수 증가로 연구 품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비판도 오랫동안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