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기고] 기초과학자의 꿈 (2013. 11. 3)

2013년 노벨상 발표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돼 간다. 매년 어김없던 노벨상 신드롬과 콤플렉스가 이렇게 조용한 적은 처음이다. 2000년대 들어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해 노벨과학상 강국으로 등극한 일본 과학자가 없어서일까. 이를 빼면 올해도 수상자 선정 패턴에 이변은 없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8명 가운데 6명이 미국 국적자이다. 이 중 3명은 이중국적이고, 화학상 수상자인 마이클 레빗은 미국·이스라엘·영국 국적자이다. 또한 6명이 유대인이며, 미국 국적자 6명 가운데 무려 5명을 차지했다.

세계의 인재가 모이는 미국이 이처럼 기초연구 분야의 절대강자 지위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민간재단이 있다.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은 1991년부터 하워드휴즈재단의 연구원 프로그램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 TWA항공사의 설립자인 하워드 휴즈가 1953년 설립한 이 재단은 현재 과학자 325명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다.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인 토마스 쥐트호프 역시 1986년부터 줄곧 지원을 누리고 있는데, 그는 독일 출신이지만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록펠러재단과 카네기재단도 기초연구 지원을 통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적인 정보서비스 기업인 톰슨로이터의 노벨상 예측도 빛을 발했다는 점이다. 물리학상 수상자 두 명은 올해, 화학상 수상자 마틴 카플러스는 2011년, 생리의학상 수상자 제임스 로스먼과 셰크먼은 2009년 예측에 포함된 연구자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된 적은 없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기초연구에 투자해 수익성 보장이 어렵고 성공 확률이 낮아 민간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분야를 대상으로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연구자에게 자유로운 활용을 보장한다고 해도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도 뒤따른다.

이에 반해 미국의 민간재단은 기초연구 재원을 확대하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를 정부 지원 이상으로 장기적이고 유연하게 뒷받침해준다. 연구자가 보다 도전적이고 새로운 시도에 나설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셈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 혁신과 인류 삶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까지 이들 재단은 담당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정부보다 민간재단의 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활성화 못지않게 새로운 가치 창출의 지속가능한 원천인 기초연구도 창조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기초연구를 통한 새로운 산업 플랫폼 형성을 언급하는 이유이다. 우리 정부도 기초연구 투자 확대와 연구환경 개선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최근 적지 않은 기업이 과학문화 확산과 노벨과학상 수상 기반 마련을 위한 사회 기여를 확대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하워드휴즈재단이 탄생하지 않을까. 20년 이상 하나의 연구주제에 매진하는 연구환경, 기초연구자의 꿈이 이뤄질 날을 기대해 본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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